가을이면 찾아오는 불청객, 독감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지며 옷차림이 점차 두꺼워지고 있는 요즘, 이맘때가 되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독감(인플루엔자)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코, 목, 폐 등 호흡기로 침입하면 독감에 걸리게 되는데, 이 바이러스는 고열, 전신 근육통, 기침과 같은 증상들을 일으킨다. 매년 12월부터 4월 사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다 보니 독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큰 오산이다. 미국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 CDC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겨울 미국에서만 독감으로 인해 8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에서도 독감과 독감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2,000~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메르스가 대유행했을 때 국내 사망자 수가 38명이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독감이 우리 생각보다 위험한 질병임을 알 수 있다.
독감의 원인이 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 표면의 핵단백질 구조에 따라 크게 A, B, C형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A형과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다. A형은 세 바이러스 중에 가장 심한 증상을 일으키며, 변이가 자주 일어나고 전염성이 매우 큰 특징을 가진다. 게다가 사람뿐만 아니라 조류, 포유류 등 다른 동물들에게도 퍼질 수 있고 인플루엔자에 걸린 동물들이 사람에게 역으로 질병을 옮길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B형 독감 역시 전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행성 독감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A형 독감보다 증상이 심하지 않고 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으며, 다른 동물들에게 퍼지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만 전염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곧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의 전쟁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독감은 고대부터 기록이 존재한다. 실제로 중국 후한 시대 장사 태수로 재직했던 장중경은 인플루엔자 A로 추정되는 질병으로 인해 일족의 절반이 사망하자, 이러한 희생이 더 없게 하도록 의학 연구를 시작하였고 상한론이라는 한의학 의서를 집필한 바 있다. 또한, 고대 로마의 티투스 황제 시대의 기록에도 인플루엔자로 추정되는 질병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도 독감과 유사한 증상을 묘사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했던 독감 중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피해를 주었던 것은 1918년경 대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이다. 스페인 독감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8년에 처음 발병했으며, 1920년 6월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던 독감이다. 사망자 수를 놓고 보았을 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질병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이유는 1880년부터 1900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이 스페인 독감을 유발했던 H1N1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상당수는 어린 시절 H3N8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는데, H3N8에 대한 면역력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인플루엔자인 H1N1이 유행하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스페인 독감이 발병했던 1918년 당시 이들은 20~40대였는데, 대다수가 1차 세계 대전에 참여하여 집단생활과 잦은 부대 이동을 하게 되었고, 이러한 요인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더욱 급속도로 퍼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엄청난 수의 사망자를 낸 만큼 스페인 독감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먼저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세계 독감 감시체계가 확립되었으며, 연례 예방접종이 실시되는 등 독감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본격화되었다. 또한 스페인 독감은 사회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The Great Influenza’의 저자인 존 배리는 “이전과는 달리 1920년대 서구 사회에서는 도덕이 무너지고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퍼져 나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스페인 독감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라고 VOA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독감과 감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독감을 ‘심한 감기’ 정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기와 독감은 다른 차원에 있는 질병이다. 먼저 두 가지 질병은 원인균부터 다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감의 원인균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것에 반해, 감기의 원인균은 라이노바이러스, 에코 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감기와 독감은 주요 증상이나 합병증을 일으키는 양상에서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먼저 감기는 콧물이나 코막힘과 같은 호흡기 증상이 주로 나타나고 3~7일 정도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완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독감은 최대 41도에 달하는 고열이 갑자기 시작되며 호흡기 증상보다는 근육통, 피로감, 두통과 같은 증상이 주로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독감은 폐렴을 비롯한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하는데, 기저 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합병증으로 인해 질환이 악화하기도 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독감은 감기와 어느 정도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감기보다 훨씬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환절기에는 독감에 걸리지 않기 위한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그렇다면 독감을 예방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독감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 백신 접종
독감을 예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백신을 맞는 것이다. 물론 백신을 맞는다고 해서 100% 독감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을 통해 독감에 걸렸을 때 초래되는 최악의 결과인 죽음을 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독감 백신 접종을 강조하고 있다. 미 공영 NPR은 “백신을 접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바꿔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백신을 접종하면 독감의 전형적인 합병증인 폐렴에 걸릴 확률이 낮아져 독감에 걸렸을 때 위독한 상황까지 가지 않게 된다.”고 전한 바 있다.
현재 접종되고 있는 독감 백신의 종류는 3가 백신과 4가 백신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3가’, ‘4가’는 각각 ‘독감 3종류에 대처할 수 있다.’, ‘독감 4종류에 대처할 수 있다.’라는 의미가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표면에 H(헤마글루티닌), N(뉴라미니다아제) 두 가지의 항원을 가지고 있는데, H는 15가지, N은 9가지의 아형(亞型)을 가지고 있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15×9)해 보면 총 135가지의 독감 바이러스가 밝혀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는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 독감 바이러스도 있고, 135가지 모두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만드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매년 3~5월 그해에 유행할 바이러스(A형 2종, B형 1종)를 발표하는데, 이를 토대로 만든 백신이 3가 백신이다. 또한 4가 백신은 3가 백신에 B형 바이러스 1종을 추가하여 만든 백신이다. 대처할 수 있는 독감의 종류가 다르다 보니 가격에도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3가 백신이 조금 더 저렴하며 4가 백신이 조금 더 비싼 편이다.
그렇다면 독감 예방접종을 받을 경우 그 즉시 독감에 걸리지 않게 되는 것일까? 아쉽지만 그것은 아니다. 백신 접종 후 항체가 형성되는 데는 2주에서 4주가량이 걸리기 때문에, 접종 후 최소 2주는 지나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예방접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독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인 9월~11월 사이에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지만, 시기를 놓쳤다면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인 12월~2월 사이에 접종해도 무방하다. 독감에 걸리기 전에 예방접종으로 인해 항체가 생기게 되면 설령 독감에 걸리더라도 덜 심하게 앓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후 6개월~12세 이하 어린이나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보건소에 가면 무료로 독감 예방접종을 할 수 있다. 2018년의 경우 9월 11일부터 4월 30일까지 무료 접종이 진행되는데, 무료 예방접종이 가능한 지정의료기관은 관할 보건소나 예방접종 도우미(nip.cdc.go.kr)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백신 자체에 과민 반응이 있거나, 급성 발열과 같은 증상이 있는 경우 독감 백신으로 인해 증세가 악화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가라앉은 이후에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독감 예방접종 시 중요한 점은 ‘매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감 백신은 WHO가 예측하는 바이러스의 형태에 따라 만들어진다. 따라서 작년에 유행했던 인플루엔자가 올해는 유행하지 않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매년 독감 예방접종을 챙기는 것이 좋다. 또한 독감 백신으로 인해 항체가 만들어지게 되면 6개월 정도의 기간만 유지된다. 이는 올해 독감 예방 접종을 했더라도 내년의 독감 유행 시기까지 항체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꼬박꼬박 예방접종을 챙기는 것’, 독감 예방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상 생활에서 기본적인 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
독감 예방접종과 더불어 기본적인 위생 수칙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지만, 일상에서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기침이나 재채기를 한 후, 수도꼭지나 문손잡이 등 여러 사람의 손이 닿은 물건을 만진 후에는 비누를 이용해 30초 이상 손을 씻어 주는 것이 좋다.
또한 일교차가 커지게 되면 인체가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두꺼운 옷을 한 벌만 입는 것보다는 여러 벌의 얇은 옷을 겹쳐 입는 등 옷차림에도 신경 쓰는 것이 좋다. 적절한 습도 유지 역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코의 점막이 건조해지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침투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방에 빨래를 걸어 두거나 가습기를 이용하면 습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